오래된 미래 - 역사적 장소와 도시주거공동체

김봉렬 (운영위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한옥의 현대적 가능성을 개발하기 위해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올해로 6번째이다. 제1회 <내일의 한옥>이 한옥을 건축적으로 재해석하고 현재화하는 데 주력했다면, 2회 <한옥과 한옥 사이>, 3회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 4회 <한옥의 경계>를 통해서 도시 주거로서의 한옥이 가져야할 관계성이나 공동체성, 실천적 역사성 등을 탐구해왔다.

이 프로젝트의 일관된 관심은 ‘한옥’으로 대표되는 역사와 거주, 그리고 건축적 실천 가능성이었다. 한옥은 비단 기와나 초가지붕을 얹은 전통적 건축 형태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수 천 년 동안 존속해왔던 역사적 실체로서의 건축 형식은 물론이고, 건축 내부의 공간 조직, 내부 공간과 외부 환경이 맺는 관계의 방식, 도시 속의 집합적 구성에 대한 광범위한 가능성까지를 포함하는 사유의 대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역사성과 주거 형식이다.

급속한 근대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장소와 건축의 기억들이 지워지고, 끊임없는 개발과 재개발의 악순환 속에서 경제적 투기와 인간 소외의 무표정한 구조물로 대체되었다. 역사적 건축과 도시는 이 땅에 살아왔던 이전 세대의 건축적 생각들이 축적된 공간이며, 우리의 어제와 미래가 연결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삶의 자리이다. 건축의 역사성이란 민족주의에 종속되는 추상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당대의 실용적 사고가 실천된 결과이며, 그때그때의 현재성들이 누적된 구체적인 지층이다. 이 쌓여진 지층 위에 현재 우리는 어떤 켜를 더 쌓을 것인가?

전통 한옥은 한 세기 전까지 지속해왔던 이 땅의 대표적인 삶의 자리이며, 현재 다시 부활하고 있는 선망의 주거 형식이다. 그러나 숙명적인 낮은 밀도로 인해 땅이 부족한 현대 도시에 적합한 형식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특유의 수공예성과 높은 건설비로 인해 이 시대의 주도적 주거 형식으로 자리 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반세기를 휩쓴 아파트의 광풍이 사라져가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하는 현재, 여전히 유효한 대안적 가능성 가운데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우리 도시의 어지러운 경관은 독창적인 개별 건물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관의 배경이 되는 집단적 주거 형식의 부재 때문이다. 새로운 도시경관(new urbanism)을 위해서 뿐 아니라, 포스트 아파트 시대를 대체할 새로운 주거형식이 필요하다.

6번째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의 사이트는 새로운 주거형식과 역사적 해석의 첨예한 제안을 요구한다. 행촌동은 서울 한양도성 바로 바깥에 붙어있는 경사 주거지이다. 이 장소에는 조선시대부터 은행동과 신촌동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어왔다. 성곽이라는 역사적 구조물이 강제하는 형태적 조건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원래의 주거와 마을 형식의 흔적 역시 중요한 역사적 조건일 것이다. 경사지에 밀집된 이른바 다세대 다가구 주거들의 재구성 역시 제안의 핵심적 내용이 될 것이다.

응모자를 대학 졸업생 이상, 젊은 건축가로 제한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상적인 제안을 넘어서는 실천 가능한 제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재 행촌동 일대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성곽마을 재생’ 사업이나 ‘행촌공터’ 사업의 대상지이다. 하나의 목표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길의 탐색이 있어야하고, 이번 프로젝트는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젊음’은 창의적인 도전을 기대하며, ‘건축가’란 프로페셔널한 전문성을 의미한다. 다양하고 의미 있는 ‘실천 가능한 도전’이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이길 기대한다.


● new urbanism이 지향하는 가치는 2013년 발표한 ‘서울시 건축선언’에 잘 요약되어 있다. 공공성, 공동성, 안전, 지속성, 자생력, 역사성, 보편성, 창의성, 협력, 자발성 등을 새로운 도시건축의 가치로 선언했다.